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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2-21 00:43
부석사를 가장 극적으로 감상하는 법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1,061  

부석사를 가장 극적으로 감상하는 법

[필름사진 여행기] 소수서원과 부석사의 고즈넉한 겨울 정취
18.02.20 20:47l최종 업데이트 18.02.20 20:47l
본 기사의 사진은 모두 60mm*80mm 크기의 중형필름으로 촬영 후, 직접 스캔하는 과정을 거쳤으며 사이즈 조정 외 다른 보정은 없습니다. GX680ii(카메라)와 Ektar100(필름)으로 촬영하였습니다. -기자말

휴가철마다 가는 강원도이지만 사는 곳이 남쪽이다 보니 먼 이동거리 때문에 항상 운전이 부담스러워 나름의 해결책을 강구하였다. 하루의 일정을 더 하고, 국도로 이동을 하면서 중간에 들르는 여행지를 하나 더 만드는 것이다. 약간 바보같아 보이는 해법이긴 하지만 눈높이에 가드레일만 놓고 몇 시간을 달리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최종 목적지는 강원도 인제군이었고. 경유지로는 영주와 정선, 평창을 선택했다. 본 기사는 8일간의 여행 중 첫 날의 여정이었던 영주 소수서원과 부석사에 대한 여행기이다.

소백산과 실개천 소수서원과 선비촌 사이를 관통하는 작고 맑은 물줄기 뒤로 눈 쌓인 소백산의 능선이 보인다.
▲ 소백산과 실개천 소수서원과 선비촌 사이를 관통하는 작고 맑은 물줄기 뒤로 눈 쌓인 소백산의 능선이 보인다.
ⓒ 안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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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엄쉬엄 운전하여 영주 시내에서 국밥으로 점심을 해결한 후 선비촌 주차장으로 진입했다. 성인 기준 3000원의 입장권을 끊으면 선비촌과 소수서원을 모두 들어갈 수 있는데 시간관계상 소수서원만 답사하기로 했다.

선비촌 매표소는 소수서원과 선비촌의 사이에 있어서 어느 쪽으로든 진행할 수 있다. 하지만 주차공간이 허락한다면 소수서원 주차장에서부터 출발하여 선비촌 방향으로 탐방할 것을 추천한다. 남쪽에서 북쪽을 향하는 코스여서 해를 등지고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걸으면 강한 역광으로 인해 시야에 방해를 받는다.

소수서원 입구 선비들의 폐부를 한껏 산뜻하게 해주었을 짓푸른 소나무들이 한겨울에도 싱그러운 녹색을 뽐내고 있었다.
▲ 소수서원 입구 선비들의 폐부를 한껏 산뜻하게 해주었을 짓푸른 소나무들이 한겨울에도 싱그러운 녹색을 뽐내고 있었다.
ⓒ 안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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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멋들어진 소나무들이 고결한 자태로 서 있는 것이 보인다. 제법 큰 키의 나무들이지만 휘 둘러서 한번에 볼 수 있을 만큼의 아늑한 규모의 정원을 이루고 있다. 그 너머로 외문(사주문)과 외벽이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가지만 가시처럼 돋아있는 은행나무 한 그루와 경렴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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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문 왼편으로는 커다란 바위들이 모여있는 것이 보인다. 거북이 알을 품고있는 형상이라고 기록되어있다. 땅 자체도 야트막하게 올라와있다. 선비들은 이곳을 '영귀봉'이라고 불렀던 것 같다. 소백산자락의 한 봉우리와도 같은 이름이다.

이곳에서 선비들은 작별의 정을 나누었다. 이 작은 둔덕에 '봉'이라는 글자를 붙인 것을 보면 선비들의 여유와 해학을 느낄 수 있다. 소나무 아래에 서서 잠시 마음 속 타임머신을 타고 선비들의 대화를 엿들어 본다.

"자네 우리 서원에 있는 '영귀봉'을 가 보았는가?"
"영귀봉? 서원에 무슨 산이라도 있는겐가?"
"그 기암괴석을 못 보았단 말인가. 영험하기로 이름난 거북을 닮았다네."
"그래? 거기가 어딘가?"
"때가 되면 알게 될걸세. 우리 유생들은 그 곳에서 마지막 작별의 정을 나누니까 말일세."

거북바위 거북이 알을 품고있는 형상.
▲ 거북바위 거북이 알을 품고있는 형상.
ⓒ 안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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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렴정 선비들이 자연을 벗삼아 쉬면서 시를 읋었던 곳. 노오란 은행잎이 만발하면 주옥같은 시어들이 샘솟았을 것이다.
▲ 경렴정 선비들이 자연을 벗삼아 쉬면서 시를 읋었던 곳. 노오란 은행잎이 만발하면 주옥같은 시어들이 샘솟았을 것이다.
ⓒ 안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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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문으로 들어가면 명륜당이 보인다. 이곳은 쉽게 말하면 강의실이다. 보통 서원의 구조는 앞쪽에 교육기관을, 뒤편에 사당을 배치하는 전학후묘의 배치인데 소수서원은 그렇지 않다. 명륜당을 중심으로 하여 왼편에 사당이 있고 뒤편에는 기숙사 격인 직방재/일신재 건물이 있다.

외문에서 보는 시각으로는 위의 설명이 맞고 명륜당의 동쪽면을 정면으로 계산하면 사당이 명륜당의 뒤편에 있는 것이 맞다. 어쨌든 상당히 틀에 맞지 않고 자유로운 배치로 되어 있는데 그 이유는 이곳이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기 때문이다.

처음 세워졌을 당시의 이름은 백운동서원이었다. 주세붕이 안향과 그의 학문을 기리기 위해 사당을 세우고, 그와 함께 후학 양성을 위해 강의실을 세운 것이 시초가 되었다.  그 후 퇴계이황이 정식 사학으로서의 기틀을 마련하면서 소수서원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명륜당 명륜당의 남서쪽 모서리를 남쪽에서 바라 본 각도. 뒤편으로 보이는 건물들은 왼쪽에서부터 장서각, 명정각, 직방재. 공사중이라 어수선한 분위기를 담지 않기 위해 화각을 조정하고, 중형카메라의 무브먼트 기능을 이용하여 중앙부를 제외한 나머지의 초점을 흐려보았다.
▲ 명륜당 명륜당의 남서쪽 모서리를 남쪽에서 바라 본 각도. 뒤편으로 보이는 건물들은 왼쪽에서부터 장서각, 명정각, 직방재. 공사중이라 어수선한 분위기를 담지 않기 위해 화각을 조정하고, 중형카메라의 무브먼트 기능을 이용하여 중앙부를 제외한 나머지의 초점을 흐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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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방재/일신재 명륜당에서 바라본 직방재/일신재. 왼쪽의 잘린 부분이 직방재로 원장의 숙소이고 오른쪽의 일신재는 교수들의 숙소이다. 가운데는 행정직원의 숙소.
▲ 직방재/일신재 명륜당에서 바라본 직방재/일신재. 왼쪽의 잘린 부분이 직방재로 원장의 숙소이고 오른쪽의 일신재는 교수들의 숙소이다. 가운데는 행정직원의 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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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시조이기도 한 안향의 묘는 서원의 서편에 있다. 정식 명칭은 문성공묘. '사'가 아닌 '묘'로 지칭되는, 우리나라에서 몇 안되는 사당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성리학자로서 안향이 지니는 격조의 높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사당 바로 옆으로 공사가 한창이라 사진을 찍지는 못했다.

이 외에도 교육관과 역사관의 건물이 좀 더 북쪽으로 크게 지어져 있는데 이는 본래의 건물이 아니라 근대에 지어진 것이다. 사료가 잘 정리되어있고 이곳에서 선비정신을 잇는 교육적인 활동들이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서원과 연결되어있고 그 규모가 서원보다 커서 마치 이 두 건물이 서원의 중심처럼 보인다. 소수서원의 본래 모습이 좀 더 지켜졌더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지만 한편으로, 지금도 역사의 한 순간이라는 시각에서 판단한다면 오히려 서원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먼 후대에 소수서원에 대해 공부하는 학생들은, 주세붕이 세운 서원이 이황에 의해 공식 사학으로 발전하였고 21세기에도 여전히 연수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했다는 기록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부석사를 가장 극적으로 감상하려면

부석사와 오후의 햇살 오후 4시경 부석사 경내에서 남서쪽을 바라본 풍경.
▲ 부석사와 오후의 햇살 오후 4시경 부석사 경내에서 남서쪽을 바라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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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늦기 전에 서둘러 부석사로 향했다. 해가 너무 기울면 소백산을 마주하는 풍경에 새카만 실루엣만 가득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중학생 때 아버지의 서재에서 읽었던 최순우의 저서를 통해 처음 알게 된 부석사를 교과서에서도 숱하게 보았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중 하나이자 전통양식인 주심포양식, 그리고 배흘림기둥에 대한 내용까지 말이다. 그리고 이곳을 다녀온 사람들의 수기에는 하나같이 황홀한 소백산 자락의 파도같은 산 그리메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했다.

매표소 옆 주차장에서부터 부석사까지는 1Km 남짓 걸어야 한다. 일주문에서부터 천왕문까지는 노오란 은행나무길로도 유명하다. 겨울이라 은행잎이 없고 시간이 약간 촉박했기 때문에 오른편으로 돌아서 올라가는 찻길로 차를 천천히 몰았다. 부석사 동편에 있는 부석사박물관 앞에도 차량 10여대 정도를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이 있다.

다행히 여행객이 많이 몰리는 계절이 아니었기 때문에 자리가 넉넉했다. 커다란 카메라를 꺼내어 역시 커다란 삼각대에 조립한 후 어깨에 들쳐 메고 경내로 향했다. 고요한 산사에 겨울의 건조한 햇살이 소리없이 닿고 있었다. 화사했을 것 같은 수국은 갈색빛으로 겨울의 정취를 나타내고 있었고 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나무들이 검소한 자태로 서 있었다.

부석사의 겨울 풍경 왼쪽으로 삼층석탑이 보이고 가운데에는 범종각이, 오른쪽 뒤편에 안양루가 보인다. 가장 뒤에 지붕만 슬쩍 보이는 곳이 바로 무량수전.
▲ 부석사의 겨울 풍경 왼쪽으로 삼층석탑이 보이고 가운데에는 범종각이, 오른쪽 뒤편에 안양루가 보인다. 가장 뒤에 지붕만 슬쩍 보이는 곳이 바로 무량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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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종각
 범종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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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터는 극적인 감상을 위해 절대 뒤를 돌아보지 않을 것을 추천한다. 위 사진에서 보이는 범종각을 낮은 자세와 마음으로 통과하면 약수를 떠 마실 수 있다. 오르막과 계단을 오르며 차오른 숨과 열기를 잠시 돌릴 수 있는 시간이다. 여기서 뒤를 돌아보면 시간이 지체될 수밖에 없다. 풍경이 너무나 아름답기 때문이다.

범종각의 뒷모습 2층 구조의 범종각이 뒤에서 바라보니 마치 단층같다.
▲ 범종각의 뒷모습 2층 구조의 범종각이 뒤에서 바라보니 마치 단층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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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루 약숫물을 한 모금 마신 뒤 다시 계단을 올라 누각을 지나면 드디어 무량수전이다.
▲ 안양루 약숫물을 한 모금 마신 뒤 다시 계단을 올라 누각을 지나면 드디어 무량수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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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무량수전의 모습은 좀처럼 잘 보이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안양루를 낮은 마음가짐으로 통과해야만 볼 수 있는 것이다. 기대에 찬 마음으로 안양루를 통과하니 교과서에서만 보았던 넉넉한 배흘림기둥 여섯 개와 엷게 미소 띤 미녀의 입꼬리처럼 슬밋하게 올라간 처마의 곡선이 차근차근 눈에 들어왔다. 나의 태생적 취향이 어쩔 수 없이 확인되는 느낌이었다. 수백년을 간직해 온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두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무량수전 파란 하늘 및 무량수전. 현판의 글씨는 고려의 공민왕이 직접 쓴 것이다.
▲ 무량수전 파란 하늘 및 무량수전. 현판의 글씨는 고려의 공민왕이 직접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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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최순우님의 저서의 제목처럼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에 기대서 볼 차례가 왔다. 그는 왜 이곳에 기대섰던 것일까. 아래의 사진을 보면 그 답을 알 수 있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석등과 안양루 옆으로 소백산의 산자락이 파도처럼 넘실댄다.
▲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석등과 안양루 옆으로 소백산의 산자락이 파도처럼 넘실댄다.
ⓒ 안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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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보인 풍경을 몇십분의 일로 줄여놓은 웹 사진의 특성 상, 현장의 감동을 고스란히 전달할 수는 없다. 사진에서는 자그맣게 보이는 산들의 물결이 실제로는 훨씬 더 지척으로 느껴진다. 탄식에 가까운 감탄사를 몇 번이나 내뱉고, 능선의 파도가 가슴으로 밀려와 심장과 폐부가 촉촉히 젖어든 다음에야 비로소 배흘림 기둥에서 등을 뗄 수 있었다.

가을에 저 빛이 역광으로 나뭇잎을 투명하게 만들면 어떤 풍경이 될 것인가. 온 세상에 소복히 눈이 내리면 또 어떤 선들이 만들어 질 것인가. 저 해가 가장 높은 능선에 걸리면 어떤 색깔의 빛이 이곳을 물들일 것인가.

앞으로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더 많다면, 부석사를 몇 번이고 더 찾을 수 있는 날 또한 많으리라 생각하며, 석양을 보지 못하고 내려가야 하는 자신을 스스로 위로했다. 이 산사에 봄이 찾아오면 그 날은 어둠이 장막을 내릴 때까지 서 있어 볼 것을 다짐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