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net

homelogin
Planets


오늘의소사 문의문 신문고 일주문 푸른숲오솔길 세상사는이야기 아름다운애송시 샘물다락방 마음의샘터 마지막한마디 그리운옹달샘 정다운사람들 생로병사 가고싶은곳 맛있는먹거리 음악으로의산책 참아름다운자연 흥겨운마당 삶의터전 얼굴 조각문화 건축문화 가족과주변이야기 강경숙갤러리 박종석갤러리 서울광염교회 밀양박씨판서공파 도서출판겨레문화 비둘기가정상담소 다산연구소 한국보학연구소 청량사 찬송가와함께 찬불가와함께
 


작성일 : 19-12-14 06:09
폐허에 삶을 욱여넣고···특별시 어딘가에 그들이 산다.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35  

[포토다큐]폐허에 삶을 욱여넣고···특별시 어딘가에 그들이 산다

글·사진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동 산 65번지

서울시 상도동 산 65번지에 아직 남아있는 두 집은 서로 마주보고 있다. 두 집 사이에 걸린 빨랫줄에 빨래가 걸려있다.

서울시 상도동 산 65번지에 아직 남아있는 두 집은 서로 마주보고 있다. 두 집 사이에 걸린 빨랫줄에 빨래가 걸려있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만큼 좁고 굽이친 골목 끝에 이르자 난데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토끼굴을 지나 이상한 나라에 다다랐던 앨리스의 마음이 이랬을까. 다른 점이 있다면 앨리스는 여러가지 기회의 문이 있는 깔끔한 방을 맞이했고 난 공기마저 내려앉은 듯한 폐허에 닿았다는 것이다. 반대쪽 골목 입구에 들어선 새 건물 앞 화려한 ‘신축 분양’ 광고물들을 지나 폐허까지 가는 데는 불과 30초도 안 걸렸다. 여기는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동 산 65번지다. 

상도동 산 65번지는 이웃 동네를 잇는 요충지다. 마을 입구에 있는 환희 슈퍼에서부터 퍼지는 네 갈래 길은 각 언덕 너머의 동네로 이어진다. 이웃 동네 주민들은 지금도 이 길을 지난다.

상도동 산 65번지는 이웃 동네를 잇는 요충지다. 마을 입구에 있는 환희 슈퍼에서부터 퍼지는 네 갈래 길은 각 언덕 너머의 동네로 이어진다. 이웃 동네 주민들은 지금도 이 길을 지난다.

오후 두 시 반, 닭이 길게 울었다. ‘서울에 이런 곳이?’하며 공간 감각이 흔들릴 때 들린 오후의 닭 울음 소리는 나의 시간 감각마저 흔들어 놨다. 어디를 둘러봐도 사람이 살았던 흔적뿐 그 어디에도 사람은 없었다. 무너진 건물들 사이로 난 좁은 길을 따라 내려갔다. 시멘트가 다 부서져 내 걸음이 닿을 때마다 흘러내렸다. 몇 걸음 걷다 보니 사람이 사는 흔적이 보였다. 계단 아래 연탄이 있었다. 두 장은 부서지고, 세 장은 위태롭게 쌓여 있었다. 담 너머 보이는 마당에는 말린 시래기가 긴 발처럼 내려와 있었다. 사람이 살고 있다는 흔적은 그것뿐이었다. 다 부숴진 집 창문 한쪽에는 오래된 디즈니 만화의 캐릭터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누군가는 이곳에서 아이가 스티커를 보며 웃기를 바랐을 것이다. 다른 버려진 집 한쪽에는 싸구려 부직포 포장지가 듬성듬성 끼워진 바구니가 보였다. 아마도 과일바구니였을 것이다. 누군가는 이곳에서 축하를 받았다. 

한때 마을의 사랑방이었다는 환희 슈퍼. 산 65번지의 아래쪽 마을 입구 노릇을 하는 이 길은 네 갈래로 뻗어 언덕 너머의 동네로 이어진다. 지금도 윗 동네 주민들은 마을 버스를 타기 위해 좁고 험한 길을 내려와 환희 슈퍼 앞을 지나 버스정류장으로 간다.

한때 마을의 사랑방이었다는 환희 슈퍼. 산 65번지의 아래쪽 마을 입구 노릇을 하는 이 길은 네 갈래로 뻗어 언덕 너머의 동네로 이어진다. 지금도 윗 동네 주민들은 마을 버스를 타기 위해 좁고 험한 길을 내려와 환희 슈퍼 앞을 지나 버스정류장으로 간다.

2016년 주민들과 철거 용역의 마지막 충돌 뒤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강제 퇴거하지 않겠다는 증서’를 받기 전까지 이곳은 여러 번 버려졌다. 개발하려는 자들과 땅 주인들이 다투며 재판을 이어갈 때 그사이에 끼인 주민들은 탈곡되는 곡식마냥 탈탈 털리다 떨어져 나갔다. 한때 100가구가 넘는 집이 있던 이곳엔 이제 2가구만 남아있다. 무너진 시멘트와 콘트리트 더미 옆으로 아직은 무너지지 않은 두 집이 서 있다. 이러는 사이 강 건너 옆 동네 용산에선 6명이 사망하고 24명이 부상당한 대참사가 벌어지기도 했다. 

[포토다큐]폐허에 삶을 욱여넣고···특별시 어딘가에 그들이 산다

동네 주민들을 만나고 싶어 나흘 동안 낮, 밤으로 이곳을 찾았다. 나흘째 되던 날에야 집으로 들어서는 한 주민을 겨우 만날 수 있었다. 수 없이 노크해도 개만 짖을 뿐 문이 열리지 않던 집이었다. 쉰여섯이라는 그는 40년째 이 집에 살고 있다고 했다. 할 수만 있다면 자식들이 태어나고 자란 이 집에서 딱 십 년만 더 살고 싶다고 했다. 가만히 건너편에 들어선 아파트 단지들을 바라보던 아주머니는 ‘세상에 저렇게 집이 많은데.. ’라며 말을 흐리기도 했다. 

[포토다큐]폐허에 삶을 욱여넣고···특별시 어딘가에 그들이 산다
[포토다큐]폐허에 삶을 욱여넣고···특별시 어딘가에 그들이 산다

2007년 주택재개발구역으로 지정돼 강제철거가 시작된 이후 처리되지 않고 10년 동안 방치되어 있던 건축 폐기물에서 1급 발암물질인 석면이 검출됐다. 2017년 동네 주민들과 환경운동가들이 시민 1만여 명의 서명을 받아 동작구청에 전달했고 처리하겠다던 구청은 석면만 걷어가고 폐허 위엔 비닐과 가림막을 덮었다. 이웃 주민들은 그 아래서 썩은 고인 물과 폐자재들 때문에 여름엔 창문을 못 열어 둔다고 했다. 지난해 9월 이곳과 붙어있는 상도 유치원에는 흙막이 붕괴 사고가 일어났다.

새 종이에 깔끔하게 출력된 ‘부동산인도 강제집행 예고장’이 폐가 기둥에 붙어있다.

새 종이에 깔끔하게 출력된 ‘부동산인도 강제집행 예고장’이 폐가 기둥에 붙어있다.

주민 아주머니는 정확한 연도를 기억하지 못했지만 ‘오래 전 언젠가 학생들이 와서 벽화를 그려줬다.’고 말했다. 그는 ‘저 멀리 아파트 들어서 있는 곳을 옛날에는 밤골이라고 불렀어요. 저기 아파트 지을 때도 많은 사람이 죽어나갔는데..’라고 말했다.

주민 아주머니는 정확한 연도를 기억하지 못했지만 ‘오래 전 언젠가 학생들이 와서 벽화를 그려줬다.’고 말했다. 그는 ‘저 멀리 아파트 들어서 있는 곳을 옛날에는 밤골이라고 불렀어요. 저기 아파트 지을 때도 많은 사람이 죽어나갔는데..’라고 말했다.

지금은 겨울이라 냄새는 나지 않았다. 다만 새로 개발사업 인허가 승인을 받은 국제자산신탁이 무너진 집에도 새로이 붙여놓은 ‘부동산 인도 강제집행 예고’에선 ‘위험하다’는 분위기가 냄새로 바뀌어 짙게 풍겨왔다. 

[포토다큐]폐허에 삶을 욱여넣고···특별시 어딘가에 그들이 산다
[포토다큐]폐허에 삶을 욱여넣고···특별시 어딘가에 그들이 산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12131800001&code=940100&nv=stand&utm_source=naver&utm_medium=newsstand&utm_campaign=row2_thumb&C#csidx762598e8b2300488dde46d26bfb81b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