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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10-07 06:21
[손아람 작가의 다리를 걷다 떠오르는 생각](9)국토개발의 상징, 다리 위에선 ‘한남동 달동네’도 아름다워 보이는 곳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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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아람 작가의 다리를 걷다 떠오르는 생각](9)국토개발의 상징, 다리 위에선 ‘한남동 달동네’도 아름다워 보이는 곳

[손아람 작가의 다리를 걷다 떠오르는 생각](9)국토개발의 상징, 다리 위에선 ‘한남동 달동네’도 아름다워 보이는 곳

손아람 작가

한남대교

지난 1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쪽에서 바라본 한남대교. 한남대교 남단은 경부고속도로의 기점이다. 1969년 건설 당시에는 제3한강교로 불렸다. 서울 강남·북뿐 아니라 서울과 대전·대구·부산을 잇는 한국의 중추 교량이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지난 1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쪽에서 바라본 한남대교. 한남대교 남단은 경부고속도로의 기점이다. 1969년 건설 당시에는 제3한강교로 불렸다. 서울 강남·북뿐 아니라 서울과 대전·대구·부산을 잇는 한국의 중추 교량이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전에는 다리가 놓이겠지. 길 가는 데 땅이 있고 땅은 돈이 된다. 이게 부동산 투자의 첫번째 원리야.” 황석영의 소설 <강남몽>에 등장하는 박기섭은 공무원 출신의 부동산업자다. 그는 경부고속도로와 한남대교가 놓이면 천정부지로 값이 뛸 강남 땅을 청와대의 정치 비자금으로 미리 매입하고, 스스로도 부동산 차익을 얻어 건설업으로 뛰어든다. 훗날 강남의 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그는 과도한 투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부도를 맞는다. 

강남·북을 잇는 서울의 중추며 
아시안 하이웨이 기점 예정지
다리 북쪽 남산 자락의 언덕엔 
아직 손을 덜 탄 주거지가 있다

한남대교는 국토개발사를 대표하는 상징성을 지닌다. 이 다리는 강남과 강북을 잇는 서울의 척추로서 서울 남부 개발의 신호탄이 되었고, 지금도 전국 최대의 일일 통행량 기록을 해마다 갈아치우고 있다. 한남대교 남단은 다리와 비슷한 시기에 개통한 경부고속도로의 기점이다. 한반도의 척추인 경부고속도로는 대전과 대구를 거쳐 부산에 도달한다. 고속국도번호는 당연히 1번을 받았다.

이 지리적 끝말잇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경부고속도로는 언젠가 유라시아 대륙의 척추인 아시안 하이웨이 1번으로 연결될 예정이다. 계획대로라면 서울-대전-대구-부산의 지리망이 베이징-뉴델리-테헤란-이스탄불까지 확장되겠지만, 지금은 그 연결고리가 한남대교 코앞에서 끊겨 있다. 아직까지 한남대교 북쪽으로는 비교적 손을 덜 탄 주거지가 펼쳐져 있다. 남산 자락으로 이어지는 크고 작은 언덕들, 그 위로 각기 다른 목적과 취향으로 지어진 주택들이 다닥다닥 들어선 모습은 내 기억에 남아 있는 서울의 첫번째 시각적 이미지다. 지표 근처에서 도심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서울의 공간은 내가 어렸을 때도 거의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한남동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저소득층 거주지와 한국 최고 부자들이 사는 거주지가 이 풍경을 양분하고 있다. 높은 지대와 낮은 건물은 두 지역의 공통점이다. 언뜻 보면 서로 닮은 형상 속에는 완전히 다른 사회적 규칙이 숨어 있다. 

평지를 점유할 여력이 없는 도시 빈민이 언덕에 모여들어 촌락을 이룬 모습은 개발도상국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다. 반대로 유럽에서는 도시의 언덕을 부유층이 선점했다. 잦은 전쟁 때문에 영주들이 요새 역할을 겸하는 성을 고지대에 세웠고, 그 주변으로 성곽도시가 형성되었다. 영주에게 충성을 약속하고 그 대가로 보호를 받는 도시민이 되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특권이었다. 국가의 인적 보호 범위를 뜻하는 ‘국적’이 지금까지도 ‘시민권(citizenship)’이라는 개념과 혼용되는 것과도 이와 관계가 있다. 봉건체제가 해체된 뒤로 언덕은 군사적인 보안보다는 정치적인 보안을 수행하는 장벽이 되었다. 고지대에 살려면 도로와 마차가 필요했고, 보통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중력을 거슬러야 하는 고지대의 비효율이 만들어낸 허들과 보유한 생산수단 사이의 부등식을 통해 주민의 자격이 가려졌다. ‘높이’는 공간을 분화시키는 사회적 기준점이 되었다.

미국에서는 도시 중심가를 ‘다운타운’으로, 비교적 부유층이 많이 거주하는 도시 외곽을 ‘업타운’으로 구분해 부른다. 업타운과 다운타운의 어원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남북의 방위, 사회적 상하, 혹은 지형의 고저를 뜻할 수도 있다. 도시 형성 과정 초기의 어떤 조건과 관련이 있겠지만, 북미 도시에서도 부유층이 언덕 주거지를 선호하는 게 일반적이다. 홍콩은 아시아에서는 드물게 부유층 주거지가 고지대에 몰려 있는 도시인데, 식민지 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영국인들은 홍콩섬 가운데 높이 솟은 빅토리아 피크를 인종의 분리장벽으로 활용했다. 걸어서는 접근하기 어려운 산 위쪽 지역은 아시아인의 거주가 법적으로 금지되었고, 한 세기 넘게 산을 오르내리며 운행하고 있는 트램 역시 20세기 중반까지는 따로 허가를 받은 아시아인만이 탑승할 수 있었다. 그나마 걸어서 오를 만한 산중턱에는 홍콩의 중산간 주거지역, ‘미드레벨’이 자리한다. 지금은 여행객을 위한 시설이 점령한 이곳에는 19세기 중반까지 항구 주변에 집을 구할 수 없었던 인도인과 무슬림, 가난한 선원들이 살았고, 20세기에는 일자리를 찾아 해협을 건너온 중국인들이 원주민들을 서서히 밀어내고 정착했다. 

홍콩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기다란 야외 에스컬레이터가 바로 여기에 놓여 있다. 기술적인 수준에서 보면 에스컬레이터와 트램 사이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지만, 정치적으로는 계단과 마차만큼이나 커다란 차이가 있다. 에스컬레이터는 발을 돕는 기계이고, 트램은 아예 발을 대신하는 기계다. 발을 쓰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계급적 함의를 갖는다. 영어권에서는 하인을 풋맨(footman), 즉 ‘발을 쓰는 사람’이라고 불렀다. 

한남동 주거지의 복잡성 역시 홍콩과 비슷한 역사적 경로를 거쳐 생겨났다. 남산으로 이어지는 북쪽 능선에는 고지대의 상징적 가치를 미리 알아본 외국 대사관들이 먼저 들어섰고, 외교관과 친분을 쌓으려는 기업인들이 가까이 집터를 잡았다. 화강암을 반듯하게 쌓아올린 저택들의 담벼락은 성벽처럼 높고 단단하다. 그 앞으로 잘 닦인 아스팔트 골목길이 넓게 뻗어 있다. 자동차가 없다면 이곳을 일상적으로 오르내리기 어렵다. 

유럽과 미국, 가까운 홍콩서도 
산 위에 부자들이 살고 있다는데
남산 아래 한남동은 특이하게 
최상위층과 서민들이 섞여 산다

많은 재벌의 본가가 위치한 이 일대에는 중세 유럽처럼 주거의 높이와 신분의 높이가 구분할 수 없도록 뒤섞였다. 지대의 불리함을 극복하기 위한 꼼수로 건물을 높이 올리려다 재벌 가문 사이에서 분쟁이 일어난 것만도 벌써 여러 차례다. 뒤꿈치를 들고 키를 재면 안되는 것처럼 나름의 주거 규범이 자리 잡은 듯하다. 이태원로와 맞붙은 언덕 초입의 좁다란 비탈길은 이 세계로 올라가는 관문이다. 거푸집의 우둘투둘한 흔적이 그대로 드러나는 시멘트 바닥에는 빨간색 페인트 스프레이로 “위험! 미끄러짐!”이라 쓰여 있다. 올라가는 사람의 노고를 배려한 경고는 보이지 않는다. 마치 경제적 계층 지형을 시각화한 것처럼 가파른 비탈길이다. 야심만만하게 걸어 오르려면 땀을 꽤나 흘려야 할 것이고, 차를 타고 내려오다 방심해서 미끄러지면 날개 없는 추락을 하게 될 수도 있다.

한남동 남쪽에서는 주거의 높이에 대응하는 사회적 함수가 거꾸로 뒤바뀐다. 유럽과 달리 공간의 계급적 분화보다 도시화의 물결이 먼저 닥친 서울에서는 사회적 약자들이 빈 땅을 찾아 산으로 올라갔다. 사회의 배제 압력이 클수록 이들은 더 먼 곳으로, 즉 더 높은 곳으로 밀려났다. 해방과 전란 이후 서울로 밀려든 도시 빈민들, 미군을 대상으로 하는 유흥업소의 종사자들, 성소수자와 예술가들, 무슬림을 비롯한 이주노동자들. 지도를 펼쳐놓고 소득 수준에 따라 구역을 색칠해 본다면, 이태원로를 경계로 한남동 북쪽과 남쪽 언덕 사이에는 수직 단층이 생길 터다. 이 가상 지도는 건너편 삼성가 리움 미술관의 소장품인 마크 로스코의 유화와 흡사하게 선명한 배색을 드러낼 것이다.

1969년 12월 개통을 보름가량 앞두고 마무리 작업이 한창인 한남대교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1969년 12월 개통을 보름가량 앞두고 마무리 작업이 한창인 한남대교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한국에서 주거의 높이가 보편적인 상징성을 획득한 것은 20세기 후반 들어서였다. 그때부터는 높이를 점유하는 훨씬 효과적인 수단인 고층 아파트가 언덕의 역할을 빠르게 대체했다. 한남동처럼 부와 가난이 인접한 공간에서 극적으로 조우할 수 있던 시대의 끝은 머잖고, 앞으로도 그런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재개발이 시작된 한남동 남쪽 사면에도 곧 고급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게 된다.

달동네는 멀리서 봐야 아름답다 
하지만 개발을 기다리는 원주민
도시재생을 꿈꾸는 ‘세입자’들 
언젠간 모두 떠나야 할 것이다
혜은이 노래처럼 강물을 따라서
 

언덕 위 저소득층 거주지는 흔히 ‘달동네’라고 불린다. 달이 가깝게 보이는 착시가 일어나서라는데, 사실 달은 언덕 위에서 커보이는 게 아니라 언덕 가까이 걸렸을 때 커보인다. 달동네라는 이름에 서린 낭만조차 철저하게 관찰자 시점에서 평가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멀리서 보면 한남동의 달동네 역시 꽤나 낭만적으로 보인다. 그와 비슷한 풍경을 찾아 여행객들은 더 멀리 부산의 감천동이나 통영의 동피랑 마을까지 떠나고, 있는 그대로 표현할 방법을 찾지 못해 “우와, 동양의 나폴리!” 같은 비유를 바다 건너에서 끌어오기도 한다. 

하지만 대개 달동네가 그렇듯이 한남동 재개발 지역도 멀리서 봐야 아름답다. 가까이 다가가면 아파트로 변신할 날만을 꿈꾸며 잠든 음산한 폐가들과, 구청에서도 분리수거를 포기한 쓰레기 더미가 골목마다 산을 이룬 모습을 보게 된다. 자동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날 수 있는 좁은 골목길은 외나무다리와 같다. 차를 타고 오르는 모험을 감행하던 중에 맞은편에서 내려오는 차와 맞닥뜨린다면 언덕 아래까지 다시 후진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20년 가까이 재개발 대상 지역으로 거론되었던 이곳의 집값은 꾸준히 올랐고, 인내심을 잃은 원주민은 대부분 집을 팔고 떠났다. 투자가치와 생활가치의 커다란 간극으로 인해 생겨난 빈집에는 젊은 예술가들을 비롯한 다음 세대 도시 저소득층이 비집고 들어왔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엄연하게 존재하지만, 이곳의 세입자들은 건물주가 원할 때는 언제든지 집을 비우고 떠나겠다는 각서를 쓴다. 

몇 년 전 가깝게 지내는 예술가들이 이곳에 집을 빌려 공동작업실을 만들었다. 품위 있게 늙은 적벽돌의 외벽 위로 야생 담쟁이덩굴이 기어오른 아름다운 3층 주택이었다. 규격에 맞는 문짝을 찾는 게 불가능해보이는 아치 형태의 현관을 지나면, 무성한 잡초 사이로 한남대교가 내려다보이는 작은 마당이 펼쳐져 있었다. 유일한 문제는 입구로 들어가는 철골 계단이었다. 세입자보다 훨씬 나이가 많을 이 계단은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위태롭게 흔들렸다. 계단 수리를 도우려고 내가 방문했던 날, 거세게 항의하는 옆 건물 소유주와 언쟁이 벌어졌다. “당장 수리를 중단하세요. 곧 재개발이 시작될 텐데 계단을 고치는 이유가 뭡니까?” “재개발이 시작되기 전에 계단에서 떨어져 죽고 싶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남의 공사에 왜 참견하시는데요.” “젊은 사람들이 동네로 들어와서 자꾸 수리하는 바람에 집을 산 사람들이 피해를 보잖아요!” 

그가 말하는 ‘피해’란 이런 논리를 통해 구성되는 것이었다. 도시개발정책은 쉽게 바뀐다, 지역의 생활가치가 올라가면 재개발계획은 언제든지 재생계획으로 전환될 수 있다, 다 무너져가는 주택을 대출 빚까지 껴안아가며 아파트 한 채 가격에 사들인 사람들로서는 그건 감당할 수 없는 재앙이다…. 돈이 되는 재개발과 생활을 위한 재개발 사이의 딜레마가 그토록 뚜렷하게 드러난 적이 없었다.

도시 재개발을 무작정 반대하려는 것은 아니다. 한남동 재개발 지역은 이미 생활한계까지 노후했다. 그래도 딜레마는 쉽게 피할 수 없고, 그래서 그것을 딜레마라 부르는 것이다. 재개발 사업 시행이 인가된 뒤로 원주민에 이어 세입자들 역시 하나둘 이곳을 떠나고 있다. 밤마다 벌어지는 술자리에서 영감을 공유하던 젊은 예술가들은 이제 보다 실용적인 대화를 주고받는다. 어디가 아직 월세가 싼가. 어디가 아직 살 만한가. 한남대교의 풍경 위에 방황하는 젊음의 정서를 덧씌운 혜은이의 노래는 그렇게 40여년이 흐른 지금 생명력을 되찾았다. 

“이 밤이 새면 첫차를 타고 행복 어린 거리로 떠나갈 거예요. 강물은 흘러갑니다 제3한강교 밑을. 바다로 쉬지 않고 바다로 흘러만 갑니다.”(‘제3한강교’, 혜은이) 

가수 혜은이의 증언에 따르면, 심의를 거치기 전의 노랫말 구절은 ‘행복 어린 거리’가 아닌 ‘이름 모를 거리’였다고 한다. 차이가 있을까? 행복 어린 거리든, 이름 모를 거리든, 행복 어린 거리로 명명된 이름 모를 거리든, 사람들은 또다시 어디론가 떠난다. 강물은 한남대교 밑을 쉬지 않고 흘러가겠지만. 그야말로 시대를 초월한 명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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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10062143005&code=940100&nv=stand&utm_source=naver&utm_medium=newsstand&utm_campaign=row2_thumb&C#csidx2a8b7f65c245c88b1e85485461fef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