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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10-23 06:07
•허시명의 술술술 58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24  

  • 허시명의 술술술 58
  • 어떻게 하면 맛있는 술 빚을 수 있나요?외국 사람에게 알려주는 맛있는 술의 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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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듣기 등록 2019.10.22 20:18 수정 2019.10.22 20:18

    술빚기는 반복된 노동이다. 그 노동을 즐길 수 있다면 술을 잘 빚을 수 있다. ⓒ 막걸리학교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와서 내게 술을 배우고 있는 이가 묻는다.

    "어떻게 하면 술을 잘 빚을 수 있습니까?"
    "성공을 닮은 실패를 많이 해봐야 합니다. 사실 실패가 아니라 성공을 향한 도전이지요. 한 번에 되는 일은 우연이고, 그 우연은 결코 내 것이 될 수 없습니다. 보물 지도 같은 제조법을 한 장 던져준다고 해도 그것이 결코 내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숙련되고 길이 나야 합니다. 그러려면 내가 빚고자 하는 술에서 한 치도 멀어지면 안 됩니다. 마치 혼자서 아이를 기르는 젊은 엄마처럼, 아이에서 벗어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양조장이 있으면, 그 안쪽에 살림집이 있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2층으로 집을 올린 경우에 1층이 양조장이고 2층이 살림집입니다. 시계 바늘처럼 엄격하게 술독의 온도와 끓어오름을 감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생이 닳도록 일하면 성실하고 한결같다는 믿음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술을 잘 빚는 이유를 그가 술만 생각하고 술만 빚고 술로써 자신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 길을 갈 수 있습니까? 그럼 술을 잘 빚을 수 있을 것입니다."

    "너무 멀고 힘들어요. 시스템을 잘 갖추면 술을 잘 빚을 수 있는 거잖아요?"
    "지금 세상은 그렇게 되었죠. 내가 빚고자 하는 용량과 동선에 맞춰 술 빚는 장비와 구조를 갖춘다면 장인의 정신을 구현할 수 있습니다. 장인의 정신이 담긴 장치를 구현할 수 있는 시대이지요. 더욱이 장인은 개인화된 자산이라면, 장치와 시스템은 사회화된 자산이니 더욱 바람직하지요. 그런데 이것도 그냥 오지 않습니다. 내가 스스로 이루려면 시간이 많이 들고, 남이 이뤄둔 것을 채택하려면 돈이 제법 듭니다."
     

    원반형으로 단단하게 디딘 누룩. 누룩이 좋아야 좋은 술을 빚을 수 있다. ⓒ 막걸리학교

     
    "쌀과 누룩과 물로 술을 빚는다고 했잖아요? 누룩을 얼마나 넣어야 좋은 술이 되는 겁니까?"

    누룩까지 와 있으니, 그는 술 속으로 들어와 있다. 진짜 미국에 돌아가서 막걸리 양조장을 차리려나 보다. 누룩을 얼마나 넣느냐고? 누룩은 인터넷이나 미국 한인마트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지만 친절한 사용설명서가 따라붙어 있지 않다. 그냥 문방구에서 파는 조립품 설명서처럼 붙어 있다. 명품을 만들 수 있는 설명이 아니다. 그래서 묻는 것일 게다. 나는 다시 기본을 이야기한다.

    "누룩을 얼마나 쓸 것인지는 누룩의 당화력을 알면 됩니다. 당화력이란 누룩이 전분을 포도당으로 변환시키는 능력을 말합니다. 당화력을 'Saccharogenic Power'라고 하여 SP로 줄여 씁니다. 10kg의 쌀을 당화시키려면 대략 270,000SP가 필요합니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밀누룩 1g의 당화력은 300SP 정도 되니, 쌀 10kg을 당화시키려면 밀누룩 900g이 필요합니다. 누룩이 잡균에 오염되거나, 보관 상태가 안 좋은 경우는 기준 당화력을 높여줘서 누룩량을 늘립니다. 그래서 기준 당화력에 맞추면 쌀 대비 9% 누룩을 써야 하지만, 때로 안정적 발효를 위해서 쌀 대비 20% 누룩을 쓰거나, 누룩향을 강화시키려고 쌀 대비 30% 누룩을 쓰기도 합니다.

    시골에 가면 그 동네에서 술을 잘 빚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이들을 만나 물어봅니다. 누룩을 얼마나 넣습니까? 물론 이렇게 물어보려면 어느 정도 친밀해지고 나서라야 합니다. 대뜸 물어보면 답을 듣기 어렵고, 듣더라도 건성인 답이 돌아옵니다. 대개는 쌀 분량의 절반 정도의 누룩을 넣는다고 말합니다. 심하게는 쌀과 누룩을 같은 양을 넣는다고도 말합니다. 이는 몰래 술을 담았던 시절의, 발효 과학과 만날 수 없었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누룩을 많이 넣으면 알코올 발효가 이뤄지고 술이 되긴 합니다. 하지만 누룩향이 강해서 맛의 균형을 맞추기 어렵습니다. 누룩은 곰팡이를 피워서 만들기 때문에, 치즈나 버섯향 같은 게 따라올 수 있습니다. 향긋하고 맑은 느낌을 주려면 당화력에 맞춰 누룩을 사용하며, 내 길을 찾아야 합니다."

    이제 그는 미국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마음이 급해졌다. 좀더 확실하고 분명한 답을 구하려고 한다.

    "어떻게 하면 맛있는 술을 빚을 수가 있습니까?"
    "혹시 수학 문제처럼 맛있는 술의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맛있는 술이 달콤한 것인지, 담백한 것인지, 엷은 신맛이 도는 것인지 나는 모릅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능력이 있다면, 맛있는 술의 절대 경지에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맛있다는 것은 상대적이고 문화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맛있다는 것을 알려면 많은 술을 맛보아야 합니다.

    술맛은 누가 알려주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그 맛을 향해 움직여 갈 수 있습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과 공동체가 맛있다고 하는 것들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해야 합니다. 속되고 대중적인 맛일 수 있지만, 그 길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당신이 작업하는 공간과 분위기와 술병 그리고 당신이 어떤 사람이라는 것까지 사람들이 이해하게 된다면, 당신이 만든 것들이 맛있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길이 열립니다.

    양조인들이 평생 가야 하고, 가고 있는 길입니다. 사람들이 새로운 맛을 반기려면 그 맛과 마음이 통해야 합니다. 그래서 익숙해져야 하고, 편안해져야 맛있음의 땅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누군가 들어갈 수 있는 맛의 공간을 꾸릴 수 있다면, 당신은 맛있는 술을 만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