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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12-01 23:59
"동백씨는 동백씨가 지키는 거다" 이 말에 떠오른 책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15  

"동백씨는 동백씨가 지키는 거다" 이 말에 떠오른 책

책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읽으며 '동백이'를 떠올리다
19.12.01 20:33l최종 업데이트 19.12.01 20:33l
시골 마을의 시장 골목. 새로 문을 여는 가게를 사람들이 주시하고 있다. 그때 등장한 한 여성. 카메라는 모자를 쓴 채 긴 생머리를 늘어뜨린 여성의 경쾌한 뒤태를 비춘다. 바닥에 떨어진 무엇인가를 줍기 위해 몸을 숙인 순간, 모자가 벗겨지고, 여성의 얼굴이 드러난다.

골목의 남성들은 갑자기 넋을 잃는다. 초등학교 야구코치는 던지던 야구공을 놓치고, 자전거를 타고 가는 아저씨는 남의 집 고추를 짓밟고, 한 중년 남자는 입에 문 파인애플 조각을 삼키지 못한다.

지난주 막을 내린 KBS <동백꽃 필 무렵> 첫 회. 동백(공효진)이 등장하는 장면이다. 드라마는 이 장면을 코믹하게 묘사하지만, 나는 어딘가 불편했다. 드라마가 종영된 지금도 인상 깊게 남아 있는 이 장면이 유발한 불편함의 정체를 신간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심에스더, 최은경 저, 오마이북, 2019)를 읽으면서 뚜렷이 알 수 있었다.

책을 읽다 보니 이런 감정은 드라마에서만 느낀 게 아니었다. 운동하기 위해 레깅스를 입고 외출한 날, 여름철 시원하기 위해 가슴 부위가 깊게 팬 옷을 입고 나간 날. 사람들의 시선이 유난히 신경 쓰이면서 느꼈던 바로 그 감정이었다.

성교육이 필요한 절대적 이유, '성적 대상화'

이 불편함의 정체는 바로 '성적 대상화'였다.
 
"누군가를 '사람'으로 보지 않고, '성적인 행동에 사용되는 물건'이나 '섹스, 성행위를 떠올리게 하는 것'만으로 보는 시선(43쪽)"

<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의 저자인 성교육 강사 심에스더와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최은경은 성적 대상화를 이렇게 설명한다. 사람을 주체가 아닌 '대상', 그러니까 '물건' 보듯 대한다는 뜻이다. 이런 태도는 타인에게 인격을 부여하지 않는다. 때문에 성적인 기준으로 사람을 도구화하고 편견과 고정관념에 가두어 놓는다.

< 동백꽃 필 무렵>은 동백을 '성적 대상화' 하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동백이 남편 없이 아이를 키우며 술집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마을 사람들은 동백을 편견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남성들은 툭하면 동백의 몸에 손을 대려 하고, 여성들은 동백을 '도덕적이지 않다'고 경계한다. 동백을 다양한 욕구와 생각을 지닌 한 사람이 아닌, '술집 여자'라는 대상으로 취급한 것이다. 

저자들이 책에서 언급한 성과 관련된 다양한 주제들은 '성적 대상화'와 관련이 있다. 여성들이 답답한 브래지어를 쉽게 거부하지 못하는 것 역시 여성의 가슴을 '성적인 것'으로만 보는 시선 때문이며, 불법촬영 범죄는 여성의 신체를 성적 대상으로만 바라보며 물건 취급하는 극단적인 예다.

이런 대상화된 시선이 일상화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 자신을 타인의 시선으로 대하는 '자기 대상화'가 일어난다. 게다가 '외모도 실력'이라는 생각이 팽배한 한국 사회의 분위기는 타인에게 보이는 모습에 더욱 신경을 쓰게 만든다.

결국 이를 내면화한 사람들, 특히 외모에 관심이 커지는 청소년기의 아이들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고 외모에만 집착하는 어려움을 겪게 된다. 저자들은 외모에 집착하는 청소년들의 깊은 내면에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숨겨져 있다고 지적한다.
 
 드라마 초반 <동백꽃 필 무렵 >의 골목상인들은 동백을 '성적 대상화'한다.
 드라마 초반 <동백꽃 필 무렵>의 골목상인들은 동백을 "성적 대상화"한다.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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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 알수록 사라지는 편견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이런 '성적 대상화'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책은 그 해법을 성에 대한 솔직하고도 자연스러운 대화에서 찾는다. 즉,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자신과 타인의 몸에 대해 알아 갈수록, 성에 대한 편견이 줄어들고 함부로 타인을 대상화하는 오류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몸뿐 만 아니라 다른 성별, 다른 사람의 몸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 해요. 차이를 통해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게 되면, 생리와 같은 신체적 변화도 자연스럽게 바라볼 수 있으니까요. 아이들이 서로의 몸에 대해 알아갈수록 '남자니까 이렇고 여자니까 저렇다'는 편견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 (77쪽)

저자들은 다양한 상황을 제시하며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법들을 보여준다. 아이들이 '이런 질문'을 해올 때 답변할 수 있도록 제시된 구체적인 예들은 '성'에 대해 '쉬쉬' 하던 어른들에게도 성에 대한 바른 가치관과 지식들을 전달한다.

또한, 책에서 사용된 젠더 중립적인 표현(책에서는 '아들 자'를 사용해 성차별적 의미를 담고 있는 '자궁'이라는 말 대신, 세포가 자라는 곳이라는 젠더 중립적인 의미를 담은 '포궁'을 사용한다) 역시 차별 없는 젠더문화를 일궈 가는 데 꼭 필요한 요소임을 알려준다.

'자연스럽게 접하고, 많이 알수록 성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저자들의 관점은 심리학적으로도 매우 타당하다. '편견'과 '차별'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온 사회심리학자들은 편견을 지닌 대상과 접촉이 잦아지고, 많이 알아갈수록, 편견과 차별적 태도가 드라마틱하게 감소함을 밝혀 왔다.
 
생각해 보니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속 상인들도 그랬다. 드라마 초반 동백을 '대상화'했던 그 상인들도 동백에 대해 알아가고, 자주 만나게 되면서 점차 편견을 버리고 동백의 편에서 까불이를 무찌르는 데 힘을 모으지 않는가.

성교육은 나와 타인에 대한 존중을 배우는 것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 (심에스더, 최은경 저, 오마이북스, 2019)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심에스더, 최은경 저, 오마이북스, 2019)
ⓒ 송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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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성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잘 알아 타인을 대상화하지 않는 것 못지않게 '자기 자신에 대한 존중'을 강조한다. 특히 저자들은 지난해 폐지된 '낙태죄'에 대해 다루면서 여성 역시 자신의 몸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는 '자기결정권'을 가져야 함을 강조하고,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태아의 '생명존중'과 충돌되지 않는 가치임을 명확히 설명해 준다.

데이트 폭력을 다룬 장에서는 '보호'라는 명목으로 여성의 삶을 통제하려는 남성들의 태도를 '부드러운 가부장'이라고 표현한다. 이런 태도 역시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존재로 바라보지 않는 것이며, 연인관계에서 상대방의 일상을 통제하려는 시도들은 배려가 아닌 폭력임을 잘 설명해준다. 그리고 스스로 자신과 타인 모두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저자들의 이런 설명은 <동백꽃 필 무렵> 속 동백을 다시금 떠올리게 했다. 동백은 까불이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음식배달을 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용식(강하늘)에게 "배달을 하든, 돈을 뜯기든, 까불이가 덤비든, 그게 다 제 인생이에요"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동백의 이런 태도는 마지막 회에서 용식에게 '동백씨는 동백씨가 지키는 거다'라는 깨달음을 준다. 이 책이 이야기하는 '자기 존중'은 일상을 다른 사람에게 통제 당하지 않으려고 했던 동백의 이런 태도와 유사하지 않을까.
 
나아가 저자들은 '존중'의 범위를 나와 조금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넓혀갈 것을 요청한다. '나는 왜 이성애자가 되었을까요?', '장애인의 성, 왜 말하지 않나요?'라는 질문을 통해 성소수자(저자들은 이 용어 자체도 차별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지적한다)와 장애인의 성에 대해서도 평등한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다.

<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는 성교육이 단지 성에 대한 지식을 늘리고, 부적절한 임신과 성범죄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성교육은 나 자신과 타인의 몸에 대해 잘 알고, 다른 점과 같은 점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존중하는 태도를 배우는 것이다.
 
내가 아닌 모든 타인을 나와 같은 소중한 '사람'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사람을 고정된 성별로 나누고 그 안에서 고정된 성역할만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설령 성별로 사람이 나뉘어 있다고 해도 성평등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나와 다르지만 같은 '사람'으로 대할 수 있어야 해요. 무엇보다 타인의 다름을 인정하고, 함부로 틀렸다고 규정하지 말아야 해요. (148쪽)

아이들이 이런 태도로 자신과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기 위해선 저자들이 이야기한 대로 '몸, 젠더, 인격, 생명'과 연결돼 있고 우리의 일상 생활과도 아주 밀접한 '섹스'에 대해 어른들부터 편견을 버리고 아이들과 열린 마음으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