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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1-14 14:22
양조장에서 아직도 '소주고리'를 사용한다는 건세계적인 술로 발돋음 할 제주술익는집 고소리술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19  

양조장에서 아직도 '소주고리'를 사용한다는 건세계적인 술로 발돋음 할 제주술익는집 고소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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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듣기 등록 2020.01.14 13:39 수정 2020.01.14 13:39
제주 중산간동로, 성읍삼거리에서 성산 방향으로 조금만 달려가면 양조장 제주 고소리술익는집이 나온다. 고소리술은 제주를 대표하는 전통소주의 이름이다.
 
한겨울 제주 성읍마을 양조장 고소리술익는집에 와서 뜻밖에 수선화 꽃을 보았다. 수선화 꽃에서 향기가 도는 줄을 처음 알았다. 매화나 장미라면 길을 걷다가도 발뒤꿈치만 들거나 고개를 숙이면 얼마든지 향기를 맡을 수 있는데, 키 작은 수선화 향을 맡으려면 땅바닥에 엎드릴 만큼 내 키를 낮춰야 한다.
 

제주 고소리술익는집 마당에 핀 수선화 ⓒ 허시명

 
그래서였을 것이다. 내가 일부러 무릎을 굽혀 수선화 꽃을 대하지는 않았을 테고, 여태껏 울타리나 언덕에 핀 수선화 꽃향을 알지 못했던 게다. 눈을 감고 맡아보니 수선화 꽃에서 맑은 레몬향이 돌고 은은한 백합향이 났다.

양조장 대표인 김희숙씨가 수선화꽃을 따서 내게 건네준다, 그것도 여러 송이를. 주인만이 베풀 수 있는 아량이다. 둘러보니 제법 마담 돌담 밑으로 수선화 꽃대가 무리지어 올라오고 있어, 나도 안심한다.

꽃대 하나에 일곱 개의 꽃송이가 달렸다고 한다. 그 말이 사실일까 싶어 자꾸 수선화 꽃대에 눈길이 간다. 여섯 송이가 보이는데 덜 핀 봉우리도 있고, 여덟 송이도 보인다. 수선화 꽃향기를 맡으며 꽃을 다시 보니, 흰 꽃받침 여섯 장 위로 노란 술잔 모양의 꽃잎이 얹혀 있다. 양조장이라서가 아니라, 수산화꽃은 영락없이 받침대가 있는 술잔이다.
 

제주 고소리술익는집 마당의 폭포와 조형물 ⓒ 허시명

 
양조장 마당에는 현무암 돌단을 쌓아 만든 폭포가 있고, 소주고리와 술병을 결합시킨 조형물이 있다. 포토존으로 쓰이는 이 조형물은 고소리술을 마시고 감동한 아랫마을 작가가 기꺼이 저렴하게 만들어준 것이라고 했다.

마당 안쪽의 밭에서는 어느 가을에는 조 이삭이 폈더니, 이 겨울에는 보리가 돋아나고 있다. 오메기술과 고소리술이 보리와 좁쌀로 빚는다는 것을 그 밭이 말하고 있었다. 밭 가운데에는 양조장에서 가장 오래되었을 동백나무가 있고, 울타리에는 새로 심은 산수국과 먼나무가 있다. 먼나무라고 하여 이름 모를 나무인 줄 알았더니, 제주에 자생하는 감탕나무과에 속한 키 큰 상록수의 이름이란다.

십여 년 전에 쉰다리 술을 맛보기 위해서 처음 와보았던 고소리술익는집은 제주의 소박한 가옥이었다. 삼나무로 기둥을 삼고, 격자문의 조릿대 사이에 진흙은 발라 지은 초가집으로, 한 동은 살림하는 안거리, 다른 한 동은 부엌으로 쓰는 밖거리였다. 평생 제주의 민가를 지은, 표선에 사는 홍씨 목수가 아들을 데리고 와 정성스레 지어 2005년에 상량을 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홍씨가 작고하면서 이 집이 홍씨의 마지막 작품이 되고 말았다. 단단하고 짜임새있는 집에서 양조 면허를 받고, 집 주인 김희숙씨가 술로 식품명인 지정을 받고, 양조장이 농림부로부터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선정되어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안거리와 밖거리가 제법 변화를 겪었다.

안거리는 손님들을 맞이하는 아늑한 카페가 되고, 밖거리는 고소리술 도구 전시장과 체험 판매장으로 바뀌었다. 술 다끄는 공간은 안거리와 밖거리 사이에 새로 마련되고, 살림집 뒤안으로 냉장창고가 들어섰다. 술 제조 공간이 눈에 덜 띄는 뒤안으로 늘어나서 다행스럽게도 홍씨 목수가 지었던 살림집과 마당의 균형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고소리술익는집 김희숙 대표와 아들 강한샘 내외 ⓒ 허시명

 
소규모로 양조업을 시작할 때, 살림집이 양조장으로 바뀌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다보면 애초에 양조장으로 설계되지 않았기 때문에 작업장으로서의 효율성과 매력이 떨어지고, 살림집은 살림집대로 균형을 잃게 된다. 그런데 고소리술익는집은 독특하다. 제주의 살림집으로서 짱짱한 매력을 지닌 채로, 술이 빚어지고 있는 양조장의 매력도 잘 담아내고 있다. 이곳에 오면 예전 제주의 어머니들이 고소리술을 내리던 모습까지도 그려볼 수 있다.

전통주업체로 지정받은 양조장들이라 할지라도, 소주를 내리는 도구는 모두 스테인리스나 구리로 바뀌었다. 술 생산량의 기대치를 맞추기 어렵고 몸도 힘들어지기 때문에, 옹기 소주고리를 고집하지 못하고 버리고 만다. 그런데 제주 고소리술익는집은 옹기로 된 소주고리를 고수하고 있다니! 소주고리로는 결코 매출을 일으켜 부자가 될 수 없다.

양조인이라면 식당업이나 빵집하고는 달리 술을 멀리 오래도록 내다팔 수 있기에, 대량 생산 체제를 갖추려고 한다. 그래서 안동소주도 진도홍주도 상업화되면서 소주고리를 애저녁에 버렸다. 제주 고소리술익는집이 전통 문화로서 고소리술을 바라보는 소명 의식이 있기 때문에, 더디지만 지금 이 길을 가고 있는 것일 게다.

부자가 될 수 없다는 고민은 제주 고소리술익는집의 좋은 거름이 될 것이다. 전통 문화를 기반으로 하되 발효와 증류 과학과 치열하게 만나야 한다. 제주가 세계인들이 찾아오는 관광지가 되어갈수록, 제주 고소리술도 세계적인 술로 발돋음해 갈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질 것이다.

이윤의 가치만 앞세우게 되면 전통은 작아보인다. 고소리술이 지금은 현무암 밭담 밑에 돋아난 겨울 수선화 꽃 같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향기를 알아주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