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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2-01 20:05
* 주의! 이 글에는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의 결말을 알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43  

* 주의! 이 글에는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의 결말을 알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의 한 장면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의 한 장면 ⓒ 그린나래미디어㈜

 
어느 시대건, 여성에게 제약이 없던 시대는 없었다. 여성에겐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의 구분이 명확했다. 여성은 결혼을 거부할 수 없었고, 그림은 그리되 마음대로 그릴 수 없었으며, 여자가 여자를 욕망하고 사랑할 수 없던 시대를 지나왔다.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이 시대를 관통한 여성들을 만났으니, 바로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의 그녀들이다.
 
초상화를 경유한 사랑
 
화구가 바다에 빠지자, 망설임 없이 바다에 뛰어드는 화가 마리안느(노에미 마를랑). 생계가 달린 일이니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그는 결혼을 앞둔 엘로이즈(아델 하에넬)의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외딴섬에 도착한다. 하지만 엘로이즈는 결혼에 대한 유일한 저항으로 초상화 모델을 거부한다. 엘로이즈의 엄마인 백작부인(발레리아 골리노)은 마음이 조급하다. 마리안느를 화가가 아닌 산책 친구로 둔갑시켜, 엘로이즈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잘 관찰해 초상화를 그리라고 주문하기에 이른다.
 
엘로이즈는 사는 게 답답하다. 그가 산책을 하며 마주하는 바다는, 그의 현실이 가 닿지 못하는 먼 곳이기도, 떠나고 싶어 갈망하는 미지의 세계이기도 하다. 결혼이 자연인 시대에 결혼을 거부할 방도가 없는 엘로이즈에게 삶은 건널 수 없는 바다다. 숨이 차도록 뛰어보고, 수영을 한 번도 해 본적 없는 몸을 바다에 던져 보고, 뭐든 시도해보고 싶지만, 결혼을 피할 수 없다. 제대로 뛸 수 없게 하는 치렁치렁한 드레스, 상체를 마음대로 구부릴 수조차 없게 만드는 코르셋은 여성을 억압한 이 시대의 표상이다.
 
엘로이즈는 차라리 수도원에서 지내던 시절이 그립다. 그곳에선 규율이 있었지만 누구나 평등했다고 말하는 엘로이즈는, 성으로 억압하지 않는 여성끼리의 관계를 그리워한다. 그곳에선 책을 읽을 수 있었고, 노래를 부를 수 있었고, 무엇보다 대화를 나눌 친구를 가질 수 있었다. 결혼을 앞두고 돌아온 집은 귀족의 신분을 강요하며 새장 속의 새가 돼라한다. 심리적 미궁에 빠져있던 엘로이즈에게 나타난 마리안느는 미로를 벗어날 출구를 열어젖힌다. 책을 읽고, 피아노를 칠 줄 알며, 건반을 두드리며 살아있는 음악을 알려주는 마리안느는 그에게 다른 세상을 속삭이는 듯하다. 말이 통하는 상대를 만났다는 건 얼마나 큰 기쁨인가. 사랑으로 전이될 둘 사이의 우정은 물에 풀린 물감처럼 번져나간다.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 장면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장면 ⓒ 그린나래미디어㈜


마침내 마리안느는 어렵게 초상화를 완성한다. 하지만 초상화의 당사자인 엘로이즈는 자신의 초상화를 보고, 생명력이나 존재감이 없는 그림이라고 일갈한다. 돌연 엘로이즈는 초상화 모델을 서겠다고 나서고, 마리안느는 초상화를 다시 그리기 위해 닷새를 더 머물기로 한다. 마침 백작 부인마저 용무를 위해 저택을 비우고, 은밀하던 이 둘의 감정은 봇물처럼 터진다.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엘로이즈를 면밀히 관찰하는 마리안느의 눈은 어느새 피사체에 대한 관찰을 넘어선다. 욕망이 피어나자 마음이 달뜬다. 마리안느의 뜨거운 눈길을 받아내며, "당신이 나를 볼 때 나는 누구를 보겠어요?"라는 엘로이즈는, '보이는 자'에서 '보는 자'로 시선을 전복시킨다. 둘은 서로를 뜨겁게 욕망하기 시작하고, 그 욕망의 실체를 밀어내지 않는다. 둘이 나눈 첫 입맞춤은 지극한 사랑의 서막을 울리고,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순간임을 알기에, 이들은 서로를 숨김없이 아낌없이 나눈다. 이들의 사랑에서 관객은 종종 사랑으로 포장되곤 하는 어떤 강요나 억압 그리고 착취를 발견할 수 없다.
 
이들이 나누는 대화는 직면한 여성의 한계에 대한 자의식으로 가득하다. "우리는 동등하다"는 엘로이즈의 말은, 신분을 떠나 여성에게 지워진 억압을 함께하려는 연대의 단초를 제공한다. 마치 비밀결사체처럼 밤에 한곳으로 모여든 신분이 낮은 여인들. 늙고 젊음에 상관없이 한곳에 모인 여인들은 삼삼오오 서로의 안부와 정보를 교환한다. 신분이 낮은 여인들끼리라도 서로의 안위를 걱정하고 도움을 주려는 이들에게 엘로이즈와 마리안느는 경계를 허문다. 이어 누군가의 웅얼거림으로 시작된 노래가 엄청난 소리의 더하기로 웅장한 아카펠라를 만들어 낼 때, 여인들은 이 의식을 통해 신분과 나이를 뛰어 넘어 연결된 존재임을 보여준다.
 
연결되어 있는 여인들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 장면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장면 ⓒ 그린나래미디어㈜


몇 달째 생리가 없자 하녀 소피(루아나 바야미)는 임신을 걱정한다. 이를 알게 된 마리안느와 엘로이즈는 근심을 같이 나누고, 낙태에 효험 있는 약초를 찾아 나선다. 약초를 다리고 그 물을 먹고 비방을 써 보지만 별무소용이다. 결국 소피는 확실한 낙태를 위해 많은 여인들의 중절을 시술했을 한 여인을 찾아가고, 마리안느와 엘로이즈는 이에 동행한다. 소피의 중절 시술을 지켜보던 마리안느가 고개를 돌리자, 엘로이즈는 지켜보라고 종용한다. 이들은 소피가 견뎌야 했던 불평등한 고통을 동족으로서 함께 하고자 한다. 임신한 소피를 탓하지 않고, 울고 불고하는 신파에 젖지 않으면서, 여성이기에 겪어야 하는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이들의 모습에서 관객은 연대의 기미를 감지한다.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유구한 시간을 임신과 낙태의 공포와 함께 했던가. 적절한 의료의 도움을 받을 수 없어, 낙태를 위해 양잿물을 마시고 높은 곳에서 목숨을 걸고 뛰어내리던 한국의 여성들 또한 결코 다르지 않은 '소피들'이다. 소피 이전부터 이후까지, 여성은 임신과 낙태의 위험과 공포와 고통을 홀로 짊어지고 있지 않은가.

"중절하겠다고 생각하며 어떤 두려움도 느끼지 않았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그렇지 않더라도 못할 일은 아니었기네, 특별한 용기가 필요해 보이지는 않았다. 평범한 시련이라 생각했다. 내 앞을 지나간 수많은 여성들이 새겨놓은 길을 따라가면 될 듯싶었다." - 아니 에르노의 <사건> 중
 
이 장면을 각인한 엘로이즈는 돌아와 잠들지 못한다. 소피를 일으키고 마리안느에게 화구를 챙기게 해, 중절을 행하던 장면을 재현해 그림으로 남기자고 제안한다. 이들에게 이 행위는 여성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기', '잊지 않기'인 것이다.
 
영화는 오르페우스의 신화를 여성의 시각으로 재해석하려 한다. 죽은 아내를 잊지 못해 저승으로 내려간 오르페우스가 저승을 완전히 벗어나기 전까지 절대 뒤돌아보아서는 안 된다는 신들과의 약속을 저버린 행위는 어떻게 재해석될 수 있을까. 오르페우스가 아내를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추억을 기억하기 위해서 돌아본 것일 수도 있다는 엘로이즈의 해석은, 누가 해석하느냐에 따라 사랑은 다양하게 변주될 수 있음을 말하는 동시에, 목전에 닥친 이별을 이 둘이 어떻게 맞을 것인가를 암시하기도 한다.
 
엘로이즈와 마리안느의 기약된 밀회는 종말을 향해 간다. 곧 백작부인이 들이닥칠 것이고, 소임을 끝낸 화가 마리안느는 더 머물 명분이, 엘로이즈는 붙잡을 핑계가 없다. 울며 애달파 하는 최루 없이 영화는, 두 연인이 끝까지 무엇을 남기고 기억하려 하는가에 집중한다. 둘은 마리안느가 그린 각자의 그림을 사랑의 증표로 간직하기로 한다.
 
하지만 닥친 헤어짐은 그림 연습처럼 학습되지 않는다. 엘로이즈가 웨딩드레스를 입어보는 장면을 목도한 마리안느는 다른 남자에게 구속될 연인의 모습을 아픔 없이 볼 수 없다. 눈물을 삼키며 떠나는 마리안느를 쫓아 나온 엘로이즈는 이렇게 외친다. "돌아봐. 그리고 기억해." 오르페우스처럼 뒤를 돌아본 마리안느와 시선을 나누는 엘로이즈. 두 연인은 신화처럼 불행히 사라지지 않을 그러나 다시는 만날 수 없을 서로를 깊게 각인한다.
 
둘의 마지막 순간은 그림으로 남는다. 마리안느는 오르페우스 신화를 재해석해 그린 그림으로 서로를 기억하려는 두 사람의 의지를 그려냈고, 새롭게 그려진 초상화 속 엘로이즈는 변하지 않은 진심을 전한다. 초상화에 그려진 책의 22페이지는 이들 연인들끼리만 송수신하는 암호다. 만날 수는 없지만, 변하지 않는 사랑을 전하는 암호.
 
시간이 흘러 음악회에 홀로 나타난 엘로이즈가 온몸과 온 정신으로 음악을 듣고 있는 장면으로 영화는 마친다. 심취한 엘로이즈는 음악을 듣고 있는 것일까, 연인 마리안느를 만나고 있는 것일까? 그는 눈을 감고 옛 연인을 소환해 내, 그가 속삭이듯 전하는 음악의 선율로 절정에 향해 온몸을 내달리는 듯하다. 엘로이즈의 음악 듣기는 연인을 접속하는 수단이며 사랑을 기억하는 의식이다. 지극한 사랑이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 게시